스물다섯 스물하나 : 극본가를 위한 변명

14화에서 백이진 앵커가 국가대표 나희도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뜬금없이 나희도의 결혼 소식이 밝혀진다. 사실 시청자들은 백이진 나희도의 해피엔딩을 기대했을 것이지만, 그러지 못한 결말에 개연성 논란(희도의 남편은 누구인지, 어떻게 결혼했는지 밝혀진 바 없다)과 또 극을 이끌던 다른 축 - 16화 말미에서 중년 희도의 세계가 청춘 희도의 세계와 마주치는 장면 - 과거의 성숙하지 못했던 이별을 중년의 희도의 시각으로 바로잡고 수정하며 비로소 길고 긴 이별을 마침표 찍는 장면이 용두사미로 평가받는다.

14화에서 백이진 앵커가 국가대표 나희도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뜬금없이 나희도의 결혼 소식이 밝혀진다. 사실 시청자들은 백이진과 나희도의 해피엔딩을 기대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서사가 그만큼 뜨겁고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결말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극을 이끌던 또 다른 중요한 축 — 16화 말미에 중년의 희도가 과거의 희도와 마주하는 상징적인 장면 — 역시 급하게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을 비판의 근거로 든다. 부족한 과거의 성숙하지 못했던 이별을 중년의 희도의 시선으로 되짚으며, 긴 이별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이 장면은,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했던 상대방과 이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보여주는 ‘미련’같이도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 결말을 '용두사미'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 엔딩은 진정으로 ‘망한’ 엔딩이었을까?

완성된 사랑만이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젊음의 사랑을 언제나 ‘완성’을 전제로 본다. 그래서 드라마 속 사랑은 ‘성공’해야 하고, 결혼이나 재회라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나이에 겪는 사랑은 때로는 가장 뜨겁지만, 가장 불완전하다. 그리고 90%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불완전한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 과거의 아련했지만 이어지지 못했던 첫 사랑을 생각하며 - 드라마에서 판타지를 갈구하게 된다.

펜싱 국가대표와 기자라는 특별한 구도 속에서 서로의 꿈을 끌어주고 응원하며 키워온 반짝이는 낭만조차 결국 9.11 테러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 지사로 가버린 이진과,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다는 아주 간단하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역학 앞에 무너지게 된다.

이 드라마의 본질은 ‘완성되지 않은 사랑’에 대한 회고다. 젊음의 사랑이 다 그렇듯, 불완전하고, 미숙하며, 때로는 너무 뜨거워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미성숙한 시대를 거쳐 어엿하고 듬직한 어른으로 자라나게 된다.

그렇게 특별한 사랑이 현실적인 이유로 식어가는 것은, 우리네가 성장하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과 꼭 닮았다.

추억은 추억일 뿐

중년의 희도가 과거 친구들과 다녀왔던 수학여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다. 그 시절의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속에서 흐릿해지고 잊혀진다. 백이진과의 연애 역시, 그녀에겐 이제 '그땐 그랬지'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청춘에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지금와서 사실은 그만큼 중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종종 있지 않은가? 그 때는 우정과 사랑이 전부였었지만, 지금은 지나간 과거, 그리고 인생의 작은 부분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시절의 감정이 거짓이었거나 덜 진심이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삶의 우선순위와 감정의 무게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슬픈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사랑과 이별은 결국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지금의 나를 구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이진은 나희도에게, 나희도는 백이진에게 각자의 청춘을 통과하게 해준 가장 따뜻한 동반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애늙은이 혹은 진짜 늙은이가 되어서야

드라마의 주 시청층을 고려해보면, 젊은 사람들이 엔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자명해보인다. 80년대생들의 감성과 어머니 세대의 감정을 버무려놨기 때문이다.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꽃같은 젊은이들과 미성숙한 사랑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중년 희도의 나이쯤이 되어서야 모두 결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자신 역시 한때 미완의 사랑을 품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비로소 드라마가 다시 보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당히 메타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