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세상 감상기

나는 이찬혁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는 사랑과 평화의 스승이자 미래이며 우두머리다.
이찬혁의 정규 2집 [EROS]의 마지막 트랙 '빛나는 세상' 을 접한 것은 올해 2월의 일이다. 사운드가 취향 저격이라 귀에 꽂고 몇 번을 돌려들었지만 가사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뜯고 곱씹고 맛보고 소화해도 또 새로운, 마스터피스를 나의 세상에서 바라본 해석을 나누고자 한다.
처음 들으면 언뜻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동지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곡처럼 들리지만, 가사 속 등장하는 '너'와 '나'를 두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내면'으로 두고 1인칭 단일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곡은 인간의 '결핍'에 대한 날카롭고 철학적인 독백이 된다.
과연 가사 속의 '나'는 누구이고,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가?
1. '너'는 곧 결핍이 해소된 미래의 '나'
"숨을 조이는 내 결핍이 나를 빛나게 해
내가 꿈꾸는 네가 된다면 난 너를 떠나갈지도 몰라"
애정결핍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흔히 '결핍'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보통은 결핍된 무언가를 외부에서 공급받아 이를 이겨내려 한다.
결핍은 이찬혁 자신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누군가 외부에서 결핍을 채워주길 기대하는 수동적인 삶보다는, 스스로 결핍을 채워나가는 삶을 사는 사람인 것이다.
이찬혁은 '난 너를 떠나갈지도 몰라'라는 구절에서 결핍을 긍정한다. 나의 결핍이 다 사라진 완벽한 '너'가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채워야 할 결핍이 없어진 나는 삶의 방향성과 생명력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삶의 동력을 잃어버리는 인간의 간사함과 같다. 집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나가면 집에 돌아오고 싶고, 앉으면 일어서고 싶고 일어서면 앉고 싶은 그런 것 말이다.
이찬혁이 '너'라고 부르는 존재를 제3자가 아닌, 바로 현재의 결핍이 모두 해소된, 내가 그토록 도달하고 싶어 하던 '미래의 나'를 의미한다고 봤다.
"밤 없는 하루는
아침의 의미마저 앗을 거란 걸"
지금의 이 결핍이 여전히 '숨을 조이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지만 난관을 이겨내고 쟁취해낸 아침, '너'의 모습을 생각하며 이 결핍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2. 내일이 두려운 '미래의 너', 두렵지 않은 '현재의 나'
"좌절이 반복되어 너는 내일이 두려운가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지 않네"
이러한 내면의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초반부 보컬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Fuzzy한 사운드는 불완전한 현실과 결핍에 갇힌 자아를 상징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이했던 소리가 걷히고, 깊고 Wet한 리버브 사운드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는 단순한 음향적 효과를 넘어, 자신의 감옥이었던 결핍을 오히려 온전히 수용한 뒤 느끼는 해방감 혹은 자아의 초월을 청각화하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결핍을 해소하고 한 단계 올라선 미래의 '너'에게 닿았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그곳이 결핍없는 유토피아일 리 없다. 그곳에는 지금의 내가 상상조차 못하는 '미지의 결핍'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의 '나' 역시 또 다른 숨을 조이는 결핍에 고통받고 있을지 물어보는 것이다.
반면, 지금의 '나'는 깨달았다. 어차피 완벽한 세상은 오지 않는다. 내가 겪을 결핍은 현재든 미래든 무조건 있을 것이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결핍을 항상 가지고 있고 이를 해소하는 구조가 곧 인생임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3. 결핍을 껴안은 채 나아가는 '우리'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그런 걸 바라는 우린 빛이 날 거야"
현재의 불완전한 '나'와, 결핍을 해소했지만 또 다른 벽을 마주할 미래의 '너'. 이 둘을 합친 것이 결국 '우리'이다.
완벽한 유토피아, 빛나는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결핍을 마주하면서도 그것을 채우려 갈구하고, 더 나아지고자 발버둥 치는 노력. 그 과정에서 또 역설적이게도 결핍이 있는 내가 상상하던, 결핍이 없는 나처럼 빛이 날거라고 선언한다. 그 때의 나는 결핍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빛나는 세상'은 인간이라면 평생 안고 가야 할 '결핍'이라는 숙명을 가장 잘 이해하는 노래고 세상 어딘가에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또 메세지를 준다. 선교사 부모님 아래서 자란 그가 가장 세련되고 또 인간에 가까운 방식으로 가장 울림있는 전도를 한다.
'파노라마'로 수백, 수천 명을 살린 이찬혁이 또 수백 명을 살리는 마스터 피스를 세상에 다시 한 번 내놓는 순간이다.